예체능연구관리자

음악, 미술, 무용 등 예체능 분야에 대한 상업, 비상업적 연구개발 등과 관련된 활동을 기획, 지휘 및 조정한다.

예체능연구관리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예체능연구관리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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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음악, 미술, 무용 등 예체능 분야의 단기 및 중장기 연구계획과 실행계획을 수립한다.
  • 연구개발관련 신사업 기획 및 신제품 발굴 업무를 한다.
  • 연구정책의 방향에 따라 연구부서나 연구팀을 구성하고 그 업무를 관리한다.
  • 진행 중인 연구개발사업의 결과를 검토하고 제안한다.
  • 연구계획부터 진행사항, 최종 결과를 상위 총괄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협의한다.
  • 연구사업 성과를 평가한다.
  • 연구개발 팀원의 업무를 관리하고 감독·평가한다.
  • 타 부서 또는 본부와 업무를 협의한다.
  • 연구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정부, 기업, 유관단체와 네트워크 구축, 업무 협의 및 조정업무를 한다.
  • 연구개발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세미나 등에서 발표한다.
  • 연구를 수행하기도 한다.
  • 정부의 과제 등을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작업강도

아주 가벼운 작업

작업장소

실내

커리어 전망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역콘텐츠 진흥 중장기 전략,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 등 새로운 연구보고서를 계속 내놓으며 콘텐츠 산업 정책 연구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1] 이 기관은 연구개발사업본부와 정책연구본부를 별도로 두고 각각 기술기획·성과관리, 미래·산업·데이터 정책을 세분화해 담당하게 하는 등 연구관리 조직을 더 정교하게 갖추는 추세다.[2] 정책연구기관들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을 통해 임직원 현황과 연구사업 집행 내역을 매년 공시해야 해, 연구관리자에게는 연구 기획력뿐 아니라 예산·성과 관리 역량까지 함께 요구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3]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체육 분야 연구기관은 국가대표스포츠과학지원센터, 차세대·장애인·지역스포츠과학지원센터 등 여러 지원센터와 연구사업·정책산업 지원사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관리자는 여러 하위 조직의 일정과 인력을 동시에 조율해야 한다.[4] 한 문화 정책연구기관의 원장은 국민이 노동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조사하고 연구한다고 소개할 만큼, 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대외에 설명하는 일이 업무의 큰 축을 차지한다.[5] 국립국악원 국악자료실처럼 학술DB 구독과 자료 열람 지원을 갖춘 연구 인프라를 이용해 문헌·통계를 조사하는 등, 사무실 안에서 이뤄지는 조사·분석 업무 비중이 높다.[6]

사회적 기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경영기획본부·문예교육지원본부·인문정신문화본부 등 여러 본부와 전국 16개 지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협력하는 구조여서, 연구관리자는 본부 간, 그리고 지역 기관과의 협업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7] 국립국악원은 국악연감처럼 기관 현황과 정책 자료를 매년 정기적으로 발간해 연구 성과를 사회에 공개하는 책무를 지속해 왔다.[8] 한국문화관광연구원처럼 문화기본법에 근거해 설립된 정책연구기관은 여러 차례 명칭과 소속을 바꾸며 성장해 온 만큼, 관리자는 정부·유관기관과의 관계 속에서 기관의 역할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적 감각도 요구받는다.[9]

여담

  • 국내 유일의 국가 체육 연구기관으로 꼽히는 한 스포츠 연구기관은 1980년 재단법인으로 설립돼 체육정책 개발과 경기력 향상을 전담해 왔다.[10]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국립국악원이 2006년 악기연구소를 열어 세종조 편종·편경, 백제금동대향로 오악기 등 고악기 복원과 국악기 음향 개선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11] 정책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02년 설립 이후 아홉 명의 원장을 거치며 문화·관광 정책 연구를 확장해 왔다.[12] 인접 분야인 문화예술교육 진흥기관은 2005년 설립돼 2013년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제도를 도입하는 등 연구·정책 기능을 제도화해 왔다.[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