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세공원

각종 공구를 사용하여 조개껍질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가공하고 목재 또는 금속재료 표면에 붙여 장식할 수 있도록 제작한다.

자개세공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자개세공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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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조개껍질을 선별하여 표면을 그라인더로 갈아 두께를 일정하게 한다.
  • 일정한 넓이로 선을 긋고 기계톱으로 선을 따라 절단한다.
  • 절단한 양면을 연삭기로 깎고 내면을 그라인더로 연마한다.
  • 일정한 크기로 연마되면 실톱을 사용하여 새나 사슴, 나무 등의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가공한다.
  • 미리 본을 그려둔 기름종이 등의 얇은 종이에 풀을 바르고 가공한 자개를 손으로 붙인다.
  • 종이에 붙인 자개에 아교 등의 접착제를 발라서 문짝 등의 백골에 부착하여 무늬를 만든다.
  • 완전히 부착되면 종이에 물을 흥건히 적시어 종이를 손으로 떼어낸다.

작업강도

보통 작업

작업장소

실내

육체활동

웅크림, 손사용, 시각

커리어 전망

자개 공예는 수요 위축과 후계 부족이라는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인문360에 실린 글은 나전칠기가 현대화·산업화의 흐름에 떠밀려 몇 안 되는 장인들의 손에서 명맥을 간신히 유지 중이라고 전하면서, 명장의 말을 빌려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3개월 이상 걸린다고 소개한다.[1] 다른 한편으로 전승 기반을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도 있다. 국가유산 당국은 박재성(경남 통영)·장철영(경남 통영)·최상훈(서울 성동구)을 국가무형문화재 나전장 보유자로 인정했는데, 그 전까지 나전장 보유자는 줄음질 부문에 1명이 있을 뿐 끊음질 부문은 없는 상태였다.[2] 통영시는 12공방 공예 중 나전칠기 전문공예가 양성을 목표로 13년째 교육과정을 열고 있다.[3]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조개껍질을 그라인더로 갈고 실톱으로 오리는 수작업이 이어지는 실내 공방 작업이라 손과 눈에 부담이 집중된다.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3개월 이상 걸리고 수정하고 반복하다 보면 그 이상 걸리는 경우도 다반사여서 호흡이 긴 일이다.[4] 마감 단계에서 다루는 옻의 우루시올 성분은 피부에 옻이 오르는 원인이 되므로 보호구 착용과 환기 관리가 따라붙는다.[5]

사회적 기여

자개세공은 백골을 짜는 목공, 칠을 올리는 공정과 나뉘어 협업하는 구조라 소목 담당자와 옻칠 담당자 사이에서 도안과 일정, 표면 상태를 맞추는 대화가 필요하다. 전통 공예 영역에서는 스승에게서 오랜 기간 전수받는 도제 관계가 이어지는데, 나전장 끊음질 보유자로 인정된 장인들도 1966~1977년 사이에 입문해 모두 40~50여 년을 기술 연마와 전승활동에 매달려 온 이력을 갖고 있다.[6]

여담

  • 나전칠기는 목기의 바탕을 소재로 나전을 가공하고 부착해 칠을 한 공예품으로, 고유어로는 자개박이라고도 부른다.[7]

  • 고려시대에는 전복껍데기를 종잇장같이 얇게 갈아서 자개로 썼는데, 이는 중국의 당나라 때에는 없던 방식이다.[8]

  • 국가무형유산 나전장은 1966년 6월 29일 지정된 무형유산 전통기술·공예 종목이다.[9]

  • 나전칠기의 밑바탕 작업은 백골제작, 다듬기, 생칠 바르기, 나뭇결 메우기, 베 바르기, 칠죽 바르기, 연마 및 기름칠 순으로 이어진다.[10]

  • 옻칠 도료는 어떤 조건에서도 방부가 잘되며 변색이 되지 않는 최고품으로 평가된다.[11]

  •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 설치와 함께 시작된 통영 12공방은 군수품과 진상품, 생활용품을 만들며 전국 지방 최대규모 공방지역으로 성장했다.[12]